2020년. 딱히 근거나 출처를 들지 않더라도 10~30대 연령의 90%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전축 앞에 앉아서 음악 듣는'이가 몇이나 남아있을까. 홍대앞 근방에 이어폰만을 파는 구멍가게가 생긴것을 처음 보았을 때도 세상이 이렇게 될줄은 몰랐었다.
10년 전 이어폰에 그토록 무관심했던 까닭은
첫째로, 당시 내가 이어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매우 적었으며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둘째로, 나이 좀 먹은 음향감독일수록 이어폰과 헤드폰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셋째로, 스티브잡스의 스마트폰이 그 전에는 없었다 (아, 이것은....).
나의 중등, 고등과 대학시절의 기억으로 혼자 있을 때에는 늘 귀에 이어폰이 들어가 있었고 디스토션 위주의 무거운 음악을 즐겼으며 왜 워크맨 볼륨은 10까지밖에 없는지 모르겠다며 한 껏 쎈 척 하곤 했었네. 버스에서 내 귀에서 새어나오는 강렬한 사운드를 사람들이 듣고 저 학생 대단한 분이네 라고 생각해 줄거라 착각하며 다니던, 아무튼 사회적으로 죄송한 기억이다. 요즘은 버스에서 귀 밖으로 음악소리가 크게 새어나오는 청년이 있으면 내가 째려본다. 물론 뒤에서.
(사진은 1984년 영화 This Is Spinal Tap 에서 캡쳐)
이어폰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것을 생활화 되었다고 해야 하는가. 귀는 이어폰으로 막고, 눈은 스맛폰을 들여다보며 걸어다니는 통에 그대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것을 알기는 하는가.
이어폰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유용하고도 위험한 물건이며, 단순히 스피커를 작게 만들어서 휴대하는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스피커는 일반인용과 프로용 (작업용)이 구분되어 있다. 감상용과 모니터용이라고 한다. 감상용은 소리를 원래보다 더 아름답게 내어줄 수록 좋지만, 작업용은 있는 그대로 내 보내야 한다. 스피커이므로 용도는 같지만, 용도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 전문가 불문하고 예전보다 스피커를 잘 안쓰게 되었다. 왜냐하면 일반인은 그대로인데, 전문가 라는 분들이 전문적인 환경에서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적절치 않은 공간과 환경에서 음향을 만지는 것이 비상식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다 이어폰으로 들으니까 같은 입장 같은 환경에서 이어폰으로 들으며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다. 대단히 납득 가고 당연한 현상인데 여기서 하나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이어폰으로도 믹싱 할 수 있지만, 이어폰만으로 믹싱을 끝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고? 이어폰은 이어폰이고, 스피커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니까 그렇다. 그냥 서로 다른것 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Fact #1.
스피커에서 소리가 발사되면 그로부터 우리 귀에 도달하는 경로가 복잡해진다. 일부는 귀로 직진하여 도착하지만 일부는 바닥과 벽과 가구들, 뒷면과 천정을 몇 번 거쳐서 반사된 뒤에 비로소 귀에 도착한다. 당구공을 쳐서 빨간 공에 바로 가는 길과, 여러번의 쿠션을 맞고 가는 길이 있는것과 비슷하다. 앞의 것을 직접음, 뒤의 것을 반사음으로 구분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듣는 소리 중 직접음의 비율은 30%도 안된다. Left 와 Right 로 부터의 소리들이 뒤엉키고 뒤엉켜서 상호 작용을 거치며 결국 그 결과를 듣게 된다. 이 과정에는 우리의 머리와 귓불도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머리의 작용을 함수화 하여 정리한 것이 HRTF (Head-Related Transfer Function, 나는 "머리전달함수" 라는 억지스러운 한국어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라 한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경로가 매우 간단해진다. 그래서 직접음만 있고 반사음이 없으며, 머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스피커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소리인 셈이다.
Fact #2.
스피커에서 소리가 발사되면 공기의 진동이 앞에서 나에게로 다가오기 때문에 음상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가 어디에 있다 라고 인지되는 위치를 의미한다.)이 정면에 생긴다.
Mamas Gun 의 This is the day 를 들으면 노래하는 목소리가 정 가운데에서 들린다. 실제로 가운데에 스피커가 없는데도 그렇게 들린다. 그래서 음상이 가운데에 "맺힌다"고 한다. 그런데 Oliver Tree 의 Cash Machine 을 들어보면 목소리가 양 옆에서 난다.
This is the day 를 이어폰으로 들어보면 역시 가운데에 음상이 맺힌다. 그런데, 스피커로 들을 때는 가운데의 앞에 가수가 있었지만, 이어폰으로 들으면 가수가 내 머리 속에 들어가 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Fact #3.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는 몇 데시벨일까? 학술적인 정답은 0dB 이다. 다만, 우리가 다 0dB 를 들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귀하의 나이에는 이미 귀가 많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뭐, 그리 우울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술적으로' 우리가 0~140 [dB] 정도에 이르는 소리를 폭넓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고, 이것을 편리한 [dB] 단위가 아닌 물리학에서나 쓰는 (공기의 압력을 나타낼 때 쓰는) Pascal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천만배 차이까지 다 들을 수 있다는 거다. (= 140dB 는 0dB 보다 물리학적으로 천만배 큰 압력이다)
귀는 작은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큰소리에는 둔감하게 움직임으로써 귀와 청각회로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이런 능력이 없다면 체조경기장 콘서트 한 번 갈 때 마다 고막을 새것으로 갈아주어야 될 것이다.
Fact #4.
귀의 입구에는 귓바퀴/귓불이라는 깔대기가 있다. 그리고 이를 지나 약 2~3cm 길이의 동굴이 있고 이 끝에 고막이 있다. 여기까지의 구간을 '외이' 라고 한다. 외이도 라는 것은 그 짧은 동굴을 말한다. 외이도는 한쪽 끝이 고막으로 막혀있는 길쭉한 관 이기 때문에, 특정한 영역(대략 3kHz정도가 된다)에서 크게 공진한다. 그래서 그 소리는 특히 잘 들리는 것인데, 기저귀가 젖었거나 배가 고파진 갓난아이들이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릴 때 영악하게도 이 대역을 사용해 운다. 전문용어로 외이도공진 이라고 한다.
한 줄 정리하면
1. 반사와 간섭의 유무, 머리가 개입하는가의 여부
2. 음상의 위치 - 전면과 머리 내부
3. 고막과 청각신경 회로의 보호회로
4. 외이도공진의 유무
이러한 특성들이 스피커와 이어폰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업용과 감상용의 경계 - 이어폰을 이해하는 법 [2]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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