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ave You Heard/Tools

오디오인터페이스, 스펙과 성능 사이의 갈등

by 채감독 2020. 2. 28.

홈스튜디오 라는 단어의 사용이 다소 어색해진 느낌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는 윤상, 롤러코스터 등으로 기억되는 다수의 오디오 선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홈레코딩 이라는 신기한 짓을 시작하여 작품을 선보이던 때이다. 동시에, 음향 프로들 사이에서는 홈레코딩은 오래동안 경시의 대상이자 다소 찌질한 모험정신에서 시작된 언더 뮤지션들의 헝그리 정신의 해소처로 취급당하기도 하였다. "홈레코딩이라니.., 음향이 뭐 장난인줄 아냐" 하는 사이에 어느새 스튜디오가 통채로 개인 작업실의 컴퓨터 안으로 들어 와 자리잡았다. 홈레코딩의 보편화는 소프트웨어 플러그인 발전과 숙명적으로 함께 하여 왔는데, 필수 하드웨어 위주의 측면에서만 보면 (인테리어와 공간, 즉 부동산의 영역은 제외하고) 프로와 홈스튜디오의 구분 없이 공히 다섯가지 물건만 충족하면 일단 작업이 가능하다. 바로 컴퓨터, DAW, (오디오)인터페이스, 마이크, 스피커(또는 모니터용의 무엇) 이다. 

화려했던 데뷰 시절의 윤상 그리고 롤러코스터


이 중 컴퓨터와 DAW 가 음질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퍼포먼스와 구현방식을 가졌지만 그것은 그들의 UI 와 함께 사용자에게 외형과 조작에 대한 선택사양으로 인식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이상적인 "계산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맥과 PC 중에 어느 것이 사운드가 좋은지, 로직과 큐베이스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등의 논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반면, 마이크와 스피커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어서, 여러 개를 두고 골라서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좀 더 신중해 지는 편이다.

여러개를 두고 그때그때 골라서 쓸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닌데다가, 말이 간단해서 인터페이스이지 그 안에 마이크프리앰프, 라인앰프, 헤드폰앰프, A/D 와 D/A 컨버터, 클럭, 믹서와 모니터 경로를 제공하는 등의 대단히 중요한 기능들이 밀집된 그야말로 스튜디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컴퓨터와 연결해주는 내 생애 최초의 인터페이스 애드립 카드, 그리고 MPU-401 미디 인터페이스


나는 홈스튜디오 운영자가 아닌 관계로 다양한 제품의 비교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다소 고가의 장비 위주로 몇 가지를 경험해 본 바 있지만 최근에 영국 Focusrite 사의 Red 16 Line 이라는 제품을 사용해보면서 인터페이스에 대한 시각을 좀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색깔론

오디오에서 착색이라는 단어만큼 성가신 것도 없다. 어떤 장비를 통과했을 때 장비 특유의 색이 입혀진다는 것인데, 같은 착색이라도 누구에게는 좋게, 누구에게는 안좋게 다가올 수 있다. 컨버터의 성향에 따라 조금 묵직하게 또는 조금 가볍지만 화려한 듯 들리는 차이를 보일 수 있는데, 묵직한 사운드는 락음악에, 화려한 사운드는 클래식에 사용하면 좋을것이라는 리뷰가 보통이다. 그런데말입니다...

1. 나는 락스타일의 팝도 하고 발라드도 하는데 발라드에는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도 많이 사용되며 때로는 펑키한 뉴잭스윙 작업도 하는 편이다. 인터페이스 최소 3가지 이상 구비해야 하는 것인가? 
2. 락음악은 묵직하고 클래식은 화려하다는 정의는 언제 누가 내려놓은 것이길래 아직도 그런 구식 관념을 참고하고 있게 된 것인가?

인터페이스와 컨버터의 선택에 있어 색깔론은 과거와 다른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때 (홈스튜디오 이전 시절에) 락음악 잘하는 녹음실, 클래식 전문 스튜디오, 힙합 맛집 등등의 구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장르별 특화된 사운드를 강점으로 여기고 영업에 적극 활용했었지만 지금 대중음악씬에서 그런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음악이 크로스오버 되어 장르 파괴가 되어 버린 지금 어떤 장르의 시그니쳐 사운드를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전자악기와 스트링이 뒤범벅된 Imagine Dragons 가 빌보드 락 차트를 휩쓸고 있지만 옛날에 나 때는 말이지, 락으로 쳐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컨버터를 품고 있는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무채색의 것 하나를 고르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다양한 음악 장르에 대한 색깔은 악기 소스와 믹싱에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마스터링에서의 컨버터는 더더욱 무미 무색 무취의 물건을 선호하게 된다. 나의 경우 Lavri 는 항상 두텁고 Protools HD 는 뿌옇고 Apogee 는 단단하고 Apollo 는 재미없는 사운드였다. (물론 최근의 버전에 대한 내가 모르는 변화도 있을 것이다. Protools HDX 의 경우 몇 해 전부터 Merging 기술로 갈아탔다. Apollo X 에 대한 호평도 많이 들은 바 있다. 태클 금지)
개인적인 선호로는 투명하고 깨끗하게, 착색없는 소리가 강점인 Crane Song 과 Merging 의 제품들, 그리고 Focusrite Pro 의 Red 16 Line 등이 꼽힌다.

Crane Song, Focusrite Pro, Merging 의 제품들

 

스펙싸움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여타 인터페이스 리뷰 글이나 영상들도 많이들 보았을 텐데, 대부분 진행이 이렇다. 박스와 포장상태 (실은 의미 없다.. 완충재만 잘 들어 있으면 OK), 앞뒤의 입출력 컨넥터 설명 (사실 사진만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에 리뷰는 필요 없다), 각종 버튼들과 기능 (한두가지 독특한 버튼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만국공통이다. 팬텀파워, 패드, 위상반전, 게인노브, 헤드폰볼륨 정도인거지 뭐. 의외로 전원스위치가 있나 없나 이것이 상당히 관심거리이다), 스펙상의 숫자들 소개. 여기까지 하고 나면 비로소 연결을 해서 소리를 들어보고 성능 테스트를 하게 된다. 
스펙에서 가장 관심 두는것이 무엇일까. 오디오 장비에서 가격을 올릴수록 함께 변화하는 숫자가 다이나믹레인지와 왜곡률이다.  

  Lynx Aurora16-TB3 Focusrite Red 16 Line UA Apollo X16 Apogee Symphony II
INPUT S/N 119dB 119dB 124dB 124dB
INPUT THD -113dB -102dB -115dB -116dB
OUTPUT S/N 120dB 121dB 127dB 131dB
OUTPUT THD -108dB -104dB -123dB -118dB
Price (USD) $3,999 $4,199 $4,299 $4,595

숫자로 판단하자면 스펙차이는 근소하지만 거의 정확히 가격과 비례한다. 무척이나 단순하고도 명확하게도, 돈 있는 대로 구입하라는게 결론이다. 들어봐도 차이가 안느껴지면 어쩐다, 굳이 비싼것을 살 필요가 없는것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반드시 고조파왜곡률 -108dB 와 -118dB 의 차이를 귀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음향작업은 귀로 들리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믿음도 지갑을 열어 구매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프로다운 냉정함이 현명한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여러 리뷰 글과 동영상을 보았지만 모두들 실제 소리를 듣기 전에 가격표와 스펙상의 숫자를 먼저 본다는 것이다. 사운드 퀄리티를 어느 정도 마음속으로 짐작하여 정해 두고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것은 소리를 듣고 난 뒤의 평가의 글이다. 대부분 저가 장비 리뷰의 결론은 사운드 퀄리티보다 기능성에 집중한다. 사운드 면에서는 최대한 P/P (Price to Performance Ratio, 가성비) 에 집중하여 설명하고, "재미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식의 가벼운 단어를 선택한다. 반면에 대부분 고가의 장비를 듣고 난 평은 단어의 영어/한자 사용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대략 이런 식이다.

"....... 상당히 와이드하면서, .......섬세합니다......대단히 명징하고요,...... 분리도가 뛰어납니다..... 뭔가 좀 더 밀도감 있고..... (결론은) 매우 플랫하다는 느낌입니다."  

정말 대단한 제품인가 보다. 넓어지고, 부드럽고 밀도가 늘어나는데 어떻게 플랫하다는 것일까?

스마트폰이던 블루투스이어폰이던 프로용 컨버터이건 간에 리뷰어들이 가장 선호하고 또 많이 발행되는 동영상 리뷰가 "개봉기" 또는 "간단 사용기" 인것 같다.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퀄리티에 대해서는 언급 안하고 한 발 빠질 수 있으니까.

S/N 의 비율이 벌어질 수 있는 길은 S 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N 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한가지, 다이나믹레인지 (DR) 또는 신호대잡음비 (S/N) 가 증가한다는 것은 "더 큰 소리가 난다"는 뜻이 아니라 "더 작은 소리를 받아들이고 낼 수 있다" 는 뜻이다. 더 작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체의 노이즈플로어가 더 낮기 때문이다. 즉, 아주 작은 디테일과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리뷰에서 리버브의 아주 작은 소리에 집중하거나 노이즈플로어에 관심 갖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히나 소스의 Velocity 범위가 한정적인 Virtual Instruments (가상악기)들로만 구성되는 많은 대중 팝음악에서 일정수준 (가령 116dB 안팎의) 이상의 DR 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사운드 채운다고 멀쩡한 음원들에 의도적으로 노이즈를 섞어서 음악을 만드는 경우를 요즘은 많이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만들어 내는 프로라면 구입 가능한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해 주기 바란다. 소비자용인 16 Bit 의 CD 음질은 약 96dB 다이나믹 레인지를 담는다. 프로용인 24Bit 작업환경이라면 약 144dB 로 향상되지만 하드웨어가 이를 따라와 주어야 완전히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CPU 의 이론적 해상도는 실제의 가장 비싼 하드웨어 성능보다 더 높다.  

오리지널의 향수

디지털의 영역이 확대되면 될수록 반대편에 몰린 아날로그의 환상과 로망으로 비롯되는 풍선효과가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서밍믹서, 500 시리즈, 마스터 리미터 등의 아웃보드이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그것들을 흉내내어주는 SSL 이나 Neve 채널스트립, Tape Saturation 플러그인을 걸어주는 것이다. 경험상으로 마스터단에 테입 플러그인 걸어서 마무리 했다 하면서도 좋은건지 뭐가 다른지 차이는 모르고 그냥 걸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다 보니 세팅을 과감하게 조정하지 못하고 그냥 통과만 하는 정도로 쓰게 되고 더더욱 차이를 느끼기 어려워 지는 힘든 현상이다. 전자레인지로 일평생 살았고 숯불구이는 맛 본 적도 없는데 유튜브 보면서 불맛 내보려하니 되겠는가... 화면 보고 하는 공부도 좋지만 먼저 먹어보는게 제일 좋은 공부 아닐까.

인터페이스의 컨버터는 디지털 기술의 집약체이고 점점 발전하는 미래지향적 부분이다. 하지만 마이크 입력단의 프리앰프는 빈티지 명기들의 위력이 워낙 대단하였기 때문에 과거지향적 부분에 속한다. Red 16 Line 에 장착된 2개의 마이크 프리앰프의 영리한 점은 이런 오리지널의 향수에 접근성의 문턱을 제대로 낮춰주었다는 것이다. Focusrite 라는 회사가 원래 마이크 프리앰프로 시작한 회사이고, Rupert Neve가 설계한 ISA 프리앰프는 여전히 전설로 거론되는 명작이다. Focusrite Pro 계열의 제품은 ISA 프리를 아날로그 회로단계에서 재현해 주는 AIR 기능을 통해 그 향수를 달래주는데, 디지털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아날로그 영역에서 입력 임피던스와 주파수 특성을 조정해서 구현한다. 궁극적으로는 중~고역의 Boost 느낌인데, 항간에는 런던의 "AIR Studio 사운드" 라고도 알려진 그것이다 (그래서 AIR 기능). Red 16 Line 의 경우 정직하지만 플랫해서 어디에나 두루 두루 사용하기 부담이 없지만, 다소 심심할 수 있다는 경우에 AIR 기능이 쇠고기다시다 처럼 방점을 찍어준다. 보컬이나 어쿠스틱 기타, 드럼의 오버헤드, 해금 사운드에 상당히 효과가 있다. 해외 동영상 블로그를 보면 "Magic Button" 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즈음에 Sir George Martin 이 Air Studio 를 위한 커스텀 콘솔 모듈을 Rupert Neve 에게 주문하였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Focusrite 제품에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마이크 프리앰프단의 핵심은 Lundahl LL1538 이라는 입력 트랜스포머인데, 입력 임피던스와 Trim 을 조절해보면 뜻밖의 사운드가 쏟아진다.                       사진이 ISA One Mic Preamp. MSRP $799.


오리지널 ISA 프리와 과연 똑같은가 하는 질문에는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먼저, 오리지널의 제품이 아닌데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는가 하는 상식적인 반문이 나오기 때문이며 둘째로, 흡사한 성향을 가지는 다른 제품인데 왜 그것과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지도 의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1천만원짜리 아날로그 아웃보드와  동일 모델의 30만원짜리 플러그인을 두고 얼마나 똑같은지 비교하는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왜 둘이 똑같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엄연히 다른 제품인데 말이지. 그냥 믹스를 더 잘 해보자.

 

채승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