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 해 디지털 스트리밍 매출은 전년도 대비 무려 41.8% 증가했다. 스트리밍의 지속적인 성장은 전반적으로 음악 소비가 증가했다는 의미이다. 스트리밍으로 인해 CD 판매가 죽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피지컬 매체인 LP 가 부활한 것은 흥미롭다. 스트리밍은 가장 편리하게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고, LP 는 가장 불편하게 음악을 듣는 방식이지만, 스트리밍과 LP 는 경쟁적인 것이 아닌 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중 월 구독료가 비싼 편에 속하는 Tidal 의 예를 들어 한 달에 불과 $20 로 6천만 곡의 고음질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가격대비 얻는 수량으로 보면 스트리밍은 월등한 우위에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을 통해 형성된 아티스트와의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은 팬이 되고 팬은 피지컬 음반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한국의 아이돌 시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패키지의 개념은 음반을 음악 이상의 것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었다. 아티스트의 음반을 구매하면 음악이 담긴 CD 또는 LP 이외에 팬들이 원하는 사진, 스티커, 편지지, 액자, 달력 등이 가득 들어있다. 팬들은 CD 나 LP를 틀어서 듣지 못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소유한다는 자체가 만족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스트리밍 세대가 만들어 내는 신 풍속도인 셈이다. 2015년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그 해 LP 레코드판의 주 소비층은 18~24세 이었다고 한다. 연구를 진행한 뮤직워치 (MusicWatch) 는 LP 구매자의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LP 레코드판은 향수 속의 복고 미디엄에서 새롭고 쿨 한 소비재로 바뀌었다. 광고에, 패션잡지에, 부티크 호텔에 턴테이블이 등장하고 있다.
스트리밍과 LP 는 각각의 이점이 있다. 스트리밍은 경이적으로 빠르고 편리하다. LP는 포장을 여는 설렘부터 패키지의 아름다움, 음악을 듣는 과정에서의 일체감과 성취감을 음악과 함께 선사해 준다. 스트리밍 시장이 점점 커지고 월정액을 듣는 구독방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 산업을 이끄는 것은 다수의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열망이며, 디지털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아날로그의 대표적 미디엄인 LP 가 해결해 주는 공생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LP 시장은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성장해 나아갈 것이다.
Record Store Day (미국)
2008년 미국의 중소 음반 상회들은 4월 3째주 토요일을 Record Store Day 로 지정하고 사람들을 음반샵으로 초대하고 특별한 혜택을 주는 등 판촉 행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개인 음반회사 Bull Moose Music 의 창고 직원이었던 Chris Brown과, Criminal Records 의 Eric Levin의 아이디어로 2007년 시작된 이 행사는 LP 가 상징하는 음반 예술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수년이 지나면서 영국과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레코드 스토어 데이는 LP레코드 부활에 기적을 일으켰다. 2019년 레코드스토어데이가 열린 한주동안 독립 음반상점에서 판매된 LP가 약 67만3천장이다. 2018년 58만장보다 약 10만장 증가했으며, 보통 페어가 열리기 전 한주동안의 판매량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다.
서울 레코드 페어 (한국)
서울 레코드 페어는 2011년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까지 8번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2천여 명으로 시작된 작은 행사였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규모가 커지고 방문객들이 증가하면서 이제는 1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찾는 국내 최대의 레코드 축제가 되었다. 행사는 약 80여 개의 음반 판매점, 음악 레이블 및 배급사, 독립 음악가, 음향기기 업체, 출판사, 개인 판매자 등이 참여하는 음반 및 음악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는 부스들로 구성되어 진다. 서울 레코드 페어는 8회를 거듭하면서 이젠 국내 음악 분야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서울 레코드 페어는 훌륭한 국내 음반들을 한정판 음반으로 제작하면서 음악 애호가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고, 희귀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음반들을 소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2016년 '원더걸스'가 신곡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디지털로 공개하기 이전에 7인치 싱글 레코드에 담아 이 페어를 통해 공개한 500장의 싱글은 90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때론 보물을 찾은 듯 수많은 음반 사이에서 찾고 있던 앨범을 발견하게도 만들어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에 소통할 기회도 제공한다. 국내의 훌륭한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관람하고 직접 만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턴테이블 판매량의 의미
50-60대의 부모들이 LP 의 부활을 대하는 마음은 그들의 10대 어린 시절의 향수이자 그들의 정체성의 표현이다. 그들은 자녀들과 함께 레코드페어에 가서 자신의 어린 날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지나간 옛날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10대들에게 둥글게 돌아가는 검은 디스크는 태어나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 LP 샵을 구경하고도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은 턴테이블이 없어서 음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향수에 젖어서 혹은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도 하지만 듣기 위함은 아니고 소장하는 즐거움을 위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BPI 에 따르면 2016년 영국에서만 33만대의 턴테이블이 판매되었으며 이는 전년도 대비 6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160만대 이상이 팔렸다. 턴테이블이 한 대 팔릴 때 마다 레코드판의 가치는 커진다.
2009년 이후 매 년 20%에서 40% 정도의 성장을 보이던 것에 비하면 2016년 미국의 LP 판매량 성장률은 8%로 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LP 시장이 정점에 이르렀다거나 이미 포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단적으로 2005-2006년의 판매량 100만장에서 2015-2016년 1,700만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BuzzAngle 에 따르면 미국의 United Record Pressing 과 Rainbo Records 두 곳에서만 연간 1천만 장을 생산해 낸다. BuzzAngle 은 또한 2018년 카세트테이프 시장이 전년도에 비해 135% 성장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판매액수로 보면 CD 나 LP 에 비해 보잘 것 없지만 성장속도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2019년 미국 내 최다 판매 LP 는 Beatles 의 'Abbey Road' 로 24만6천장이 판매되었다. 연간 판매량 순위에 오른 음반은 대부분 1985년 이전에 발표된 옛날음악이긴 하지만, 그 중 신예 빌리 아이리쉬의 음반도 올라 있다 (2019년 한해에 17만6천장이 판매됬다). 영국 BPI 의 2017년 통계를 보면 판매되는 LP 의 1/3 은 신보 음반이다.
몇 년 전까지 총 LP 판매량의 60% 이상이 Rock 장르 음악이었다. 하지만 2018년 그 수치는 41.7%로 떨어졌고 랩과 힙합은 크게 상승했다. Rock 위주로 흘러가던 장르 편중성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CD 판매량이 아직은 LP 보다 크다. CD 시장이 디지털 다운로드를 앞서고 있다. 하지만 CD 가 향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CD 판매량은 매 년 9억장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2010년 2억5천만장, 2016년 1억장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CD 가 시장에 처음 선보인 지 38년이 되었으니 (1982년~),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추어보아 대단히 오랫동안 남아있는 장수 매체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전 세계에 보급되어 아직도 작동하고 있는 수많은 CD 플레이어의 힘이다. 또한 앞으로도 한동안은 CD 시장이 0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꾸준히 감소하고 명맥을 유지할 뿐 되살아나는 불꽃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피지컬 시장에서 LP 가 선두를 차지하는 것은 CD 가 얼마나 빨리 가라앉는가에 달린 시간문제이다.
인터넷 환경 또한 LP 의 시장 확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LP를 사는 경로는 신보를 파는 음반샵 또는 중고를 파는 중고매장을 돌면서 발품을 파는 것이 기본이다. 동호회를 통한 정보 공유와 맞교환, 상호 거래도 중요한 거래 경로이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얻는 정보와 거래량의 규모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많은 LP 전문 거래 사이트들이 사업 규모를 키우면서 영업 중에 있어서 희귀한 음반의 탐색과 거래가 손쉬워 졌다. 대표적으로 ‘The Vinyl Record Collector’, ‘The Vinyl Factory’, ‘Record Junkie’ 와 같은 LP 전문사이트는 물론 신보를 판매하는 음반사이트들도 중고 음반을 함께 판매한다.
More (Digitally) Connected, But Why Are We More Alone?
CD와 디지털 음원은 매우 선명하고 깨끗한 음악을 들려준다. 하지만 LP 는 따뜻함과 깊이를 추구한다. 지글거리고 틱틱 대는 잡음이 섞여있지만 그 속에서 음악 사운드는 자연스럽고 명확하다. LP 는 큼직한 커버 디자인으로 인해 미술적 작품성도 가지고 있다. 이 기록물을 재생하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 커버에서 디스크를 꺼내어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먼지를 닦아내고 톤암 끝에 달린 카트리지를 들어 신중하게 소리골 위에 올려놓는 것, 그리고 음악이 끝난 뒤 반대의 작업을 거쳐 정리하는 것을 포함하는 감상 의식이다. 음악 매체와의 접촉에 있어 이러한 행위는 상당한 성취감과 재미를 준다. CD를 케이스에서 꺼내어 감상할 때에도 다소 간략화된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만 LP를 틀 때 훨씬 잘 느껴진다. 사회학에서 보는 디지털 세대의 정체성은 “우리는 점점 더 함께 외로워진다”는 것이다. 랜선을 통해서는 수억명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외로운 시대인 것이다. 가상의 디지털 파일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유대감, 이것이 LP 시장의 부활과 확대를 필연적으로 가져온 이유이다.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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