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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 Heard/Sounds

2019년 : 트로트 열풍인가, 송가인과 유산슬의 트로트 농단인가.

by 채감독 2020. 6. 16.

2 7 년.

2019년을 보내고 나니 트로트 열풍이라는 말이 여기 저기서 난리다. 1992년 이후로는 전에 없던 현상이다. 1992년을 기점으로 그 전까지는 TV 가요프로그램과 연말 가요 시상식을 주현미, 현철 등의 트로트 가수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소방차와 서태지와아이들 등장 이후로 트로트가 득세한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27년만의 기현상이다. 

과연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트로트 스타들의 활약이 매우 인상적인 한 해 였다. 가히 트로트 현상이라고 할 만큼 사회적 파장이 대단하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실제로 트로트 열풍이기는 하다. 멜론 벅스 지니에 트로트 차트가 생긴 것을 보면 더이상 설명은 필요치 않다. 

그런데, 트로트 열풍 이라는 표현에 있어서는 유감이다. 트로트는 장르이고 문화이고 산업이다. 그리고 열풍이라 함은 어떤 것의 붐이 일거나 대세가 되었을 때 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의 현상을 들여다 보면 트로트 열풍이라 하기에는 공감의 요인이 의외로 적을뿐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역효과도 많이 보이는것 같다. 

 

트로트 문화가 대세로 자리잡았는가. 트로트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가. 마치 온 국민이 트로트와 사랑에 빠진듯 언론의 스타 모시기 경쟁과 보도가 넘쳐난다. 대중들은 이러한 현상 속에서 트로트 산업의 부흥이 일어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산업의 부흥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갑자기 트로트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게 된 당신은 최근에 트로트 음악 소비에 얼마나 지출하였는가? (한달 무제한 제공되는 정액제 스트리밍으로 음악 감상한 것은 제외하자. 그것은 트로트를 위한 새로운 지출이 아니다.)  소비와 지출이 없는데 산업이 발전할 리는 없다. 현장에서 만나는 기존의 트로트 가수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겉과 속이 너무도 다른 것이 현재 상황이다. 트로트 시장이 커진것은 맞지만 그 형태가 매우 기형적이고 스타 의존적이어서 대다수의 활동중이던 가수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는 것이다. 

트로트 장르의 주 수입원은 음원판매가 아니다. 디지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보다는 실물 음반의 유통이 강한 것이 트로트의 전통적인 유통 흐름이다. 주 소비층이 장년-노년층으로 집중되어 있다 보니 그렇다. 어찌하다 보니 젊은이들까지도 트로트를 듣게 되었지만 지금은 음반 판매가 거의 없다. 장-노년층도 어느 정도 디지털로 이동을 하여 CD 보다는 USB 에 익숙한 세대가 되었다. (유통되는 USB 대부분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점은 차치하자) 그리고 젊은 층 못지않게 유튜브에 익숙하고 유튜브 콘텐츠에 충성하는 세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마저도 유튜브 조회수의 댓가인 광고수익은 업로드한 사람의 몫이다. 다른 장르의 음악에도 동일하게 적용 되겠지만 특히 트로트 장르의 주 수입원은 공연행사와 ‘유단노’ 저작권에서 나온다. ‘유단노’라 함은 ‘유흥주점, 단란주점, 노래방’ 세 가지를 모아서 칭하는 분류이며 실제로 차트 상위권의 극소수 음악을 제외하고는 작가들에게는 ‘유단노’ 저작권 수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음악은 노래가 없는 반주음악이기 때문에 오로지 작사 작곡을 한 저작권자에게만 수익이 돌아가고 가수와는 무관하다. 그러면 가수 입장에서 남은 것은 공연행사에 출연해서 받는 개런티가 전부인 셈이다. 

 

 

송 가 인.

가수 송가인이 아직 무명일 때 음반작업을 하면서 스튜디오에서 만난것이 2017년, 개런티 몇십만원에 기차타고 이동하면서 객차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으며 행사 뛰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당시 음반 제작자의 서포트 덕에 스튜디오 작업도 제대로 하고, 승용차 (에쿠스 리무진이 좋은 차 이지만 여전히 가수에게는 불편하다.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수가 없다. 그래서 카니발 타는게 원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었다) 뒷자리에 앉아 행사를 다니게 되었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정말 노래 참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드렸던 기억이 있다. 송가인은 이듬해에 그 제작자와 결별을 하였고 그 다음해 봄에 스타가 되었으니 당시 제작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송가인은 무명에서 정상으로 올라섰다. 대한민국에 송가인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 송가인 노래는 아무도 모른다. 히트곡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행사 개런티는 100배가 올라서 지금 시세로 3500만원이다. 송가인이 무대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히트곡이 없지만 스타 가수가 된 매우 특이한 사례가 최근의 트로트 열풍에서는 너무도 흔하게 생산되고 있다. 트로트가 좋은것이냐, 스타가 좋은것이냐 구분이 필요하다.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는, 트로트 산업의 수요와 공급에 있어서 외형적 비만에 비해 내실은 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행사를 만들어도 예산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산은 동일한데 송가인은 모셔와야 한다. 흥행보증수표이니까 반드시 모셔야 한다. 행사의 제작비에는 무대 음향 조명 등의 시설, 연출과 스텝, 홍보비가 포함되며 일정 액수가 출연진의 개런티로 책정 된다. 이것을 잘 배분해서 상위급 가수 두세명, 중급 가수 여러명, 지역의 무명가수들도 여러명 섭외해서 행사를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예산은 그대로이고 이 일정 액수의 거의 전부를 한 가수에게 몰아주어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남는 돈으로 행사를 매꾸려면 신인 무명 지역가수들로 채워야 한다. 이 분 들은 20~30만원에도 흔쾌히 무대에 오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내고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수입 보다 무대가 절실한 분들이다. 출연료 100~500 사이에 움직이던 대다수 기존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수 밖에 없다. 트로트 열풍이라는데 왜 설 자리가 없어지는것인가. 가수들이 피해자로 둔갑하게 되었다. 행사는 행사대로 함량이 떨어지게 되어서 행사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가능성은 커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행사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몫이다. 

스타 연예인의 몸값이 올라가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몸값이 한계를 모르고 치솟을 수 있는것은 그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떠한 개런티를 지불하더라도 행사에 송가인을 모셔야겠다고 하는 이는 관객이나 대중들이 아니라 행사의 주최측이다. 한 명의 슈퍼스타를 출연시킴으로써 행사에 참여하는 방문자의 총 수를 늘이는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가 대세라고 하면 무조건 그를 모셔와야만 안심하고 마는 주최측의 입장, 요즘 누가 뜬다고 하면 그를 만나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대중들의 쏠림현상, 이런 것들이 특정 연예인의 몸값을 기상천외한 수준으로 올려놓는 원동력이다. 송가인의 노래실력이야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개런티가 실력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20~30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시간동안 활동해 오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중견 A 급 가수들의 출연료가 800~1,000만원 수준이다. 

 

유 산 슬.

2019년 9월, 30년차 연예인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 하였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에서 기획적으로 탄생시킨 캐릭터로, 두 곡을 만들어서 불렀고 두 곡이 대 히트를 했다. 미스트롯 송가인이 일으켜 세운 트로트 현상을 유산슬이 이어받았고 연말까지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견인차가 되었다. 유산슬이 트로트를 부흥 시켰을까?

그가 부른 노래는 ‘합정역 5번출구’ 와 ‘사랑의 재개발’ 이다. 우선 음악적 견지에서 두 곡을 살펴보자. 제목은 직설적이고 무게감이 없는 다소 웃긴 설정이다. 가사 역시 그렇다. 요즘의 트로트 음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형이다. 프로그램에서도 등장했던 ‘사랑은 무한리필’ 을 비롯해 ‘사랑의 밧줄’ ‘사랑의 적금통장’ ‘사랑의 배터리’ ‘사랑의 마침표’ '사랑의 초인종' '사랑의 수갑' 등등 코믹한 요소를 접목시킨 사랑타령 플롯을 가져온 것은 트로트의 희극적 단면을 활용해 유산슬의 트로트가수+코미디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 내어 준 장치이다. ‘사랑의 재개발’ 에 쓰인 멜로디는 솔라도레미 다섯개의 음을 주로 쓰는 5음계 장조인데 고전적인 한국의 음악 색깔을 내 주기는 하면서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만들기 쉽고 부르기 쉬운 특징이 있다. ‘합정역5번출구’ 역시 5음계의 멜로디를 사용한다. 이 곡은 라시도미파 순서로 구성되는 단조인데, 반음계가 많이 쓰이게 되는 특징이 있다. 소위 ‘요나누키 단음계’ 로 불리는데,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에 자리 잡은 당시 트로트 음악의 핵심적 특징이다. 일본의 엔카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어 엔카가 탄생했다는 의견도 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트로트 음악의 주된 성분이 되었고, 그 와중에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동백 아가씨’ 등의 노래들이 금지곡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웃픈 사실은 반일감정을 담아 가장 많이 불리운 노래 ‘독도는 우리땅’ 이 요나누키 단음계를 사용한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라는 것.) 이 음계로 노래를 만들면 전형적인 뽕짝이 바로 나온다. 헌데, 엔카와 왜색 논란은 다분히 과거의 이슈이다. 현재의 트로트는 이런 5음계 기법에서 벗어난 지 수십년이 되었고, 트로트의 음계 라는 것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양하고 화려한 화성적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5음계 단조 트로트는 단순하고 촌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것이 유산슬 이라는 특수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소위 먹혀들어간 것일 뿐이다. 유산슬의 두 히트곡이 너무도 쉽게 만들어지고 또 곧바로 히트해 버리는 과정을 보면서 트로트는 저렇게 막 만들어서 불러도 되는것 이라는 오해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은연 중 주입 되었다. 트로트는 좀 웃기는 것 이라는 단편적 시각이 전국민에게 좀 더 깊이 침착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극적 요소로 풀어나간 유산슬 프로젝트는 트로트를 비하 또는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를 배면에 숨겨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유산슬은 노래도 못한다. 네이버 NOW 에 출연한 유산슬은 스스로 “한 번도 음악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고 변명 아닌 변명을 들려주었다. 놀면뭐하니 프로그램 중에 자신의 가창력을 걱정하는 유산슬에 대해 “노래는 기계가 한다. 가창력은 필요 없어” 라는 자막이 그를 위기에서 모면하게 해 준다. 송가인과 함께 부른 ‘이별의 버스정류장’ 에서는 송가인의 가창력과 너무도 극명히 대비되는 유산슬의 노래실력에, 듣는 내가 숨고 싶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이 완성되고 당당히 소개될 수 있는 것은 유산슬을 제외한 모든 스텝들이 초 정상급 실력자들이기 때문이다. 반주 음악을 맡은 악단의 윤영인 단장을 비롯해 색소폰 김원영, 기타 김광석, 박광민, 키보드 최승찬, 피아노 변성룡, 베이스 신현권, 드럼 강윤기, 퍼커션 박영용, 코러스 김효수. 이들은 쉽게 이야기 하자면, 나훈아 신곡 녹음한다 하면 모시게 되는 그런 급의 분들이다. 음악에 처절하게 문외한이고 가창력도 바닥 수준인 유산슬이 초단기간에 불러 낸 노래가 차트 1위를 밀어내고 승승장구 하는 모습은 음악 산업적으로 보면 많은 가수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자괴감 유발 원인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예능프로에서 기획한 단발성 캐릭터인데 너무 엄한 잣대로 평가하는 중이라고 하기엔 유산슬은 엄연한 가수이다. 실제 유산슬 이름으로 음원을 발표하였고 콘서트도 가졌다. 개런티를 받고 행사무대에 올랐으며 2019년 12월 MBC 방송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30년차 연예인 유재석에게 주어질 수 없는 신인상을 받은 그 인물은 분명 유산슬 이라는 신인 가수임에 틀림 없다. 

 

롱 패 딩.

신문에서 인터넷 언론에서 그리도 떠들어 대고 있는 트로트 열풍의 이면에서 기형적이고 편중된 인기 지형도, 그리고 방송과 언론의 스타 메이킹 이면에 놓인 산업 생태계의 어두운 면이 조명될 필요가 있다. 트로트 열풍을 잘 들여다 보면 유산슬 이라는 기획된 캐릭터에 대한 관심, 미스/미스터트롯 출신의 극소수 스타플레이어에게 집중되는 쏠림현상이라고 보는 해석에 무게를 싣고 싶다. 이미 정상에 있는 유재석이라는 보증수표를 고등학교로 보내어 교복을 입혔는데, 요즘의 교복이 아닌 군정시대에 입던 검정색 교복을 입은 것이고, 이것을 보고 교복패션의 부활이요 교복 열풍이라고 떠들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방송과 언론이 어떻게 한 인물을 스타로 만들어 내고 또 어떻게 퇴출시킬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매스미디어 권력의 자습서같은 일면이다. 2020년에도 미스터트롯 으로 이어져 뜻밖의 호황기를 누리는것처럼 보이는 트로트 산업계의 실질적인 명암은 어떻게 자리잡힐 것인지. 소수 스타에게만 집중되는 일시적 편중이던, 언론의 바람몰이로 탄생되는 기획 스타들의 잔치이건, 결국은 트로트 산업의 발전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트로트 열풍 이라는 말이 쉽게 오고 쉽게 가는 열병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20년 4월 현재 멜론 트로트차트 20위 안의 노래 중 미스터트롯 입상자가 아닌 가수는 단 두명 뿐이다. 게다가 둘 중 한명은 유산슬이다. 

우리는 트로트가 좋은걸까 송가인 유산슬이 좋은걸까. 이스트팩, 꼬꼬면, 허니버터칩, 노스페이스, 롱패딩.. 지금껏 쏠림현상의 열풍이 지나갈 때마다 씁쓸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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