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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 Heard/Sounds

심성락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2009)

by 채감독 2020. 1. 7.
"채감독님 좋은 일 같이 한번 하실까요"

라임라이트 강재덕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은 때가 2008년인것 같다. 대한민국에 발표된 음악 중에 아코디온 소리가 나오면 거의 이분 연주라고, 참여한 음반의 갯수 말고라도 '대통령의 악사' 라는 애칭으로도 알려진 세션 연주인 심성락 선생. 참여한 작품은 기네스북 수준이지만 정작 당신 음반 한 장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제작에 참여할 뜻이 있는 재능인들을 수배중인 때였다.

대통령의 악사 라는 말은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술자리 노래 반주를 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어떤 자리인지도 모른 채 불려가셨다가 대통령이 등장하여 놀랐다 하신 일화가 있다. 이 후 군부 출신의 전두환 노태우 등의 대통령 노래의 반주로 청와대에 자주 출입하신 바 있는데, 정작 심성락 선생은 그 호칭을 그리 좋아하시는 눈치는 아니었다. 뭐, 대통령의 노래 반주 라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할까.

그보다도 선생의 스토리 중 더 찡한것은 신체적 장애에 대한 것인데, 아무래도 손과 귀를 사용하는 기예()인에게 손가락과 청각장애라는것은 가장 자극적인 시나리오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나이에 손가락 마디 하나를 잃게된 사건이 있었고 한쪽 귀는 난청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이 난청이지 거의 들리지 않는것으로 안다. 
그가 대중음악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은 도전이었을까 다행이었을까. 결정적인 핸디캡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대중음악의 연주자라는 직업에는 학벌도, 외모나 신체조건도 모두 무용하다. 오직 연주 자체로 이야기 할 뿐이다. 선생은 중졸 학력으로 정식 음악교육은 받지도 않았다. 선생께서 손가락 네개만으로 건반을 눌러야 하는 어려움을 이겨낸 노력과, 태어난 모습 온전히 보존한 연주자의 노력을 저울에 놓고 비교하는것도 지나친 신파일 뿐이다. 다만, 절망의 시간을 버티고 포기하지 않게 되기 까지의 쓰디 쓴 고통의 시간에 대한 연민이 더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수 개월의 기다림동안 곡 작업과 녹음, 믹싱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마스터링이 끝난 음반이 발매 되었다. 2009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2016년 한 선배님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아직은 추운 초봄, 한밤중에 담배를 사러 선생께서 운동복 바람으로 집앞을 나온동안에 재떨이 안의 꽁초가 불씨가 되어 중곡동 단칸집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화재는 곧 잡혔다고 하지만 세간은 모두 연소되었고, 전화기도 없는 오밤중에 선생은 동네의 단골 다방 문을 두드려 그곳에서 밤을 보내고 이내 갈 곳도 입을 옷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체 일부와 같은 아코디온이 불에 타버렸다. 

소식은 퍼져 후배들이 모금에 나셨다. 공연기획사 대표의 노력으로 클라우드펀딩이 진행되었다. 300만원 정도에 구입했던 이탈리아제 아코디온은 30여년이 지나 같은 모델이 3천만원이 되어 있었다. 많은 분들의 온정과 걱정으로 텀블벅 펀딩이 3천만원을 돌파하였고 선생은 다시 악기를 품게 되었다. 절판되었던 음반이 재발매 되었다. 후원해준 분들을 위해 후배 게스트들과 함께 한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60년간 무대 뒤편에 있었던 선생은 비로소 무대 한 가운데에 앉아 연주하였다. 이탈리아산 5열식 수퍼 파올로 수프라니 아코디온은 무게가 30kg 에 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람을 내기 위해 그가 견뎌야 하는 무게이다.


재발매는 되었어도 음반의 인기는 계속해서 올라가는 모양이다.

중고 음반판매 사이트에서 캡쳐했다


첫 트랙이 나오면 아! 하고 탄성을 내게 된다. 12곡 내내 연주는 물과 같고 바람은 부드럽다. 심성락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에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음악이 들어 있다.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바람의 노래' 아닙니까?                       

                                                                                                                                                     - 심성락

(2016년 텀블벅 클라우드펀딩 자료의 사진)

한국 대중음악사에 빛을 더해준 아코디언 세션으로 성장하기까지, 심성락은 대통령의 악사로, 수많은 가수들의 앨범과 드라마, 영화음악의 세션으로 지난 반세기를 아코디언과 함께했다. 후배들은 그의 드라마틱한 음악 인생에 감동을 받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흔쾌히 앨범제작에 참여 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그리고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음악감독 ‘조성우’, 영화음악계의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음악감독 ‘황상준’과 ‘박기헌’. 한국인 최초로 미국 에미상의 작곡가로 노미네이트 되었던 신명수, 광고음악계에서 뚜렷한 작품들을 남겨온 오디오 프로듀서 강재덕 ……이들이 바로 심성락 앨범 제작의 키메이커로서 참여한 핵심 멤버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앨범 제작의 핵심 멤버들이 모두 재능 나눔의 의미로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앨범 제작의 핵심 멤버들이 무보수를 선언 하였고, 당대 최고의 사진작가 안성진, 멋진 손 글씨와 디자인을 담당해 준 디자이너 김혜진, 마스터링 엔지니어 채승균 등 각자의 분야에서 가히 ‘최고’라 인정받고 있는 예술가들도 기꺼이 앨범제작의 선의에 무보수로 동참 해 주었다. 이렇듯 심성락의 이번 앨범은 노 선배에게 바치는 후배 아티스트들의 헌사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인 것이다.

(인용문의 출처는 음반의 기획사이자 강재덕프로듀서가 대표로 운영하는 라임라이트 보도자료이다)

Recorded by 윤승근, 진효진, 류호준 (Limelight Studio), 박승천, 김유나 (M&F Studio)
Mixed by 전수민 (M&F Studio)
Mastered by 채승균 (Sonic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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