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 발매된, 케이팝 거대 주주인 싸이 9집 수록곡 대부분은 믹싱 등의 사운드 작업을 Stay Tuned 가 맡은 가운데 나에게 유독 눈에 띄는 3곡이 있다. ((귀가 뜨인다고 하지는 않았다.)) 앨범의 크레딧을 살펴보면 잘 알려진 해외 거장 3명의 이름이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That That 은 Tony Maserati 가 믹싱했고, Everyday 는 Chris Lord Alge 의 작품이다. 그리고 Happier 의 믹싱은 Mick Guzauski가 맡았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Chuck Mangione 의 Feels So Good 은 Mick Guzauski의 젊은 시절 작품인데, 앨범 앞 커버 보다도 LP 뒷면의 사진이 더 눈이 가는 앨범이다.
1977년작 Feels So Good 은 무려 200만장 이상 팔렸고 이듬해 빌보드 앨범차트 2위,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에 오르며 Chuck Mangione 를 스타 플레이어로 출세하게 만든 수작이다. 플루겔혼과 E.P.에 Chuck Mangione를 비롯, Sax 등 각종 관악기를 맡은 Chris Vadala, 기타에 Grant Geissman, 베이스에 Charles Meeks, 드럼에 James Bradley Jr. 이 참여했다. 신디사이저가 없는 어쿠스틱 밴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매끄러운 이지리스닝 넘버를 잘 연주해 낸 작품이다.
그런데 앨범의 뒷면에 주인공 Chuck Mangione 를 받쳐들고 있는 멤버는 총 5명이다. 연주자가 총 5명인데 사진에는 6명이 있다. 가만히 보면 이들 중 한 명은 음반을 녹음한 엔지니어 Mick Guzauski 이다. Mick 은 왜 이 사진에 함께 등장한 것일까.

1950
이들의 스토리는 Chuck 과 Mick 의 고향인 뉴욕 로체스터에서 시작된다. Chuck Mangione 는 (대부분 그런 흔한 스토리처럼) 어려서 부터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데, 10살때 자기 집에 놀러온 아빠 친구 Dizzy Gillespie 가 선물로 트럼펫을 주는 바람에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뉴욕이라는 지명이 유명하긴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뉴욕은 맨하탄이라는 아주 작은 지역을 말하는 것이고 실제 뉴욕주 자체는 대단히 넓다. 뉴욕의 도시들 중 로체스터 (Rochester)라는 곳은 그다지 유명한 것도 없지만 학교만큼은 내세울만 한 자랑거리다. 로체스터대학이 미국에서 전통있는 명문대학으로 알려져 있어서인데, 특히나 로체스터 대학의 가장 큰 자랑은 이스트만 음악대학(Eastman School of Music)이다. 쥴리어드, 손튼, 이스트만 이렇게 3대 음악학교로 손꼽히는 최상위권 학교이기 때문이다. Chuck Mangione 는 대학 갈 나이에 클래식과 재즈 사이에서 고민고민하다가 클래시컬 한 쥴리어드를 포기하고 이스트만으로 진학했고 졸업도 수석으로 했다. 그리고는 지역에서 강의, 작품활동과 공연으로 꽤 바쁘게 지내는 젊은 뮤지션으로 활동중이었을 것이다.

1960
그리고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Chuck은 40년생 용띠니까 아마도 59학번이었을 것이고, 그 보다는 훨씬 어린 동네 꼬마 Mick 이 처음으로 레코딩이라는 것을 시작한 것이 1960년대 말 즈음이다. 낡은건지 고장난건지 암튼 중고 녹음기를 수리해서 동네 밴드 연주를 라이브로 녹음하고, 이것을 다른 녹음기에 바운스 치고 다시 보컬을 녹음해서 더블링을 하는 오덕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하프인치 4트랙 녹음기를 갖게된 이후로는 당시 잘나가는 이스트만 음대 학생이던 Steve Gadd, Tony Levin 같은 형들과 놀면서 녹음을 해주었다.
1970
그러던 중 1970년쯤 이스트만 음대에 오디오 엔지니어 코스가 생겼다. 미국 최초의 엔지니어 전문 과정 중 하나였고, Phil Ramone 이 선생님 이었다. Phil Ramone 은 살아 생전 그래미 후보 34번, 수상 14번을 한 전설의 사운드 엔지니어이시다. Mick 이 여기를 정식으로 다닌것 같지는 않고 방학중에 짧게 개설하는 Summer Course 를 수강하면서 프로의 세계를 처음으로 영접하게 된다.

동네 형들 녹음도 해주면서 라이브 렌탈회사 일도 하고 바쁘게 살던 Mick 이 Chuck 을 역사적으로 만나게 된다. 렌탈회사 일을 하면서 Chuck 의 라이브 공연은 Mick 이 거의 맡아서 사운드를 잡았던 모양이다. Chuck 이 Mercury 레코드에서 낸 첫 앨범이 라이브 더블 앨범 Friends and Love 인데, 이스트만 극장 공연실황을 Mick 이 4트랙으로 녹음한 것이다. 원래 발매할 계획은 없었는데 Mick 이 라이브 멀티트랙을 집에 가져가서 믹싱까지 했고 이 때가 1970년 이었으니 아마도 Phil Ramone 의 가르침을 녹여낸 음반일 가능성이 크다. 믹싱이라고 하지만 일단 녹음이 4트랙이었고, 믹싱콘솔도 없었다. 1번 트랙에는 리듬섹션을 모두 담았다. 2번과 3번에는 오케스트라를 좌 우로 나눠서 담았다. 4번 트랙에는 그 밖의 솔로악기들과 모든 보컬들을 담았다. 객석에도 마이킹을 했는데 앰비언스는 좌-우 스테레오 이어야 하기 때문에 2번과 3번트랙에 섞어서 담았다. 마이크도 없어서 온 동네를 다니면서 구할 수 있는 마이크는 닥치는대로 빌려다가 녹음을 했다. 믹싱콘솔이라 할 수 없는 믹서를 가지고 믹싱을 해야 했다. Ampex MX35 라는 P.A. 믹서였다. 4개의 입력 채널과 각각의 팬, 볼륨 노브가 전부인 진공관 믹서이고 팬 콘트롤은 L-C-R 셀렉트 스위치 타입이다. 계획에 없던 이 빌런의 작품은 결국 발매 되어 세상에 선보여졌고, 이듬해인 1971년 그래미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첫곡은 싱글커트되어 빌보드 HOT 100에 오른다.

1975
로컬 연예인이던 Chuck 을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준건 Mick 의 진심을 다 한 프로덕션 덕분이었다. 이 일로 한껏 유명해진 Chuck 은 1975년 대형 음반사인 A&M 과 계약하게 되고 Mick 에게 함께 L.A. 로 가자고 제안한다. 꿈에 그리던 L.A. 에서 Mick 은 Chuck 의 A&M 첫 앨범을 녹음한다. 45인조 오케스트라를 포함하는 대규모 스케일의 악단과 난생 처음 만져보는 24트랙 녹음기는 그에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앨범이 Chase The Clouds Away 인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공식 사용되기도 했다. 여러가지로 가문의 영광이다. 쇼 비지니스의 메카 L.A. 에서 Mick 역시 조지 메센버그 등 거장을 만나게 되고, 작업에 참여하게 된 아티스트와의 인연도 Earth Wind & Fire, Prince, Kenny G, Michael Bolton, Mariah Carey 등으로 이어지면서 나름 프로덕션 업계에서는 Chuck Mangione 를 능가하는 유명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1977
Chuck Mangione 와 Mick Guzauski 는 서로에게 인생의 잊지 못할 큰 선물을 주고 받은 셈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선사한 것은 재능이나 행운이 아니라 기회 였다. 적당한 기회를 통해 그들은 성공하였고 이미 성공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재능과 노력을 쌓아둔 상태였기 때문에 그 기회를 타고 무대에 올라 자신을 펼쳐보인 것 뿐이다. Feels So Good 의 커버 뒷면에 사진은 이들이 서로를 단지 뮤지션 대 엔지니어의 관계로 여기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음악은 연주로만 완성되지 않으며 사운드 프로덕션의 인간적이고도 음악적인 협업 없이는 존재하지 못함을, 그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낸 음악적인 멤버로서의 존중인 것이다.
1977년작 Feels So Good 앨범의 오리지널 라이너 노트에는 Chuck 의 조금 특별한 설명글이 있는데 그 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이 앨범은 엄마곰 아빠곰 (a.k.a. Ellen and Mick Guzauski)과 함께 사는 토끼 Jeffrey 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Jeffrey 는 배변훈련이 되어있고, 아침에 콘프레이크와 바나나를 먹는 토끼인데, 곰 엔지니어가 동면중일 때 깨워주는 알람 시계 역할도 한다. 곰 가족에게는 조만간 새끼 토끼가 생길것 같다.
나의 특별한 가족 Judi, Nancy, Diana에게 감사한다.”


짧은 라이너노트의 대부분을 Mick (Mick 보다는 Mick 이 키우던 토끼) 이야기로 할애한 것이 흥미롭다. 엄마곰과 아빠곰은 Mick 부부를 뜻하는것 같다. Mick 의 풀 네임은 Nathan “Mick” Guzauski,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엄마곰은 Mary Ellen Guzauski 이다. 부인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Mick 의 공식적인 가족관계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관계 뿐만 아니라 생년월일도 자료가 없어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다.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도 없어서 현재 인터넷 상에 노출되는 그의 사진은 2000년 이후의 것들 밖에 없다. 그래서 Feels So Good 커버의 사진에 있는 그의 모습이 유일한 젊은 시절의 초상이다. Mick 의 사진들을 보면 상당수가 촬영한 사람 이름이 Ellen Guzauski 로 되어 있다. 결혼생활이 상당히 유지되고 있으며 아내가 사진을 주로 찍어준다는 것 정도의 추정을 해 볼 뿐이다. 수많은 인터뷰가 공개되어 있지만 그의 개인생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로지 사운드와 음악 이야기 뿐.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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