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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Days Ahead

A.I. 작곡이 저작물이 아닌 이유

by 채감독 2021. 3. 28.

자동 작곡 (?) 의 효시는 아마도 주사위 게임을 통해 만들어진 모차르트의 알레아토닉 미뉴엣이 아닐까 싶다. 이 음악은 주사위 2개를 던져서 나온 수의 합에 따라 음악을 배열하는 '우연' 과 '규칙' 에 기반한 작곡 기법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소위 A.I. 작곡과 다른것일까?

 

사진 : 달리 [SBS 교양 공식채널]

 

인공지능과 옥주현의 "대결" 아닌 "대결"

SBS 특별 기획으로 방영된 세기의 대결 이라는 프로그램 중 음악에 대한 방영분은 내 주변에서 적잖이 화제거리가 되었다. 대부분은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로 부르는 정인의 '오르막길' 에 대한 놀라움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옥주현김광석의 모창까지 보고 나면 어찌되었든 나 역시 놀랍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라고 그럴듯하게 지칭하긴 하지만 결국 사람의 프로그래밍과 코딩의 결과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 그 명칭이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목소리와 창법을 모방해서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램 스스로 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게다가 예능적 흥미를 위한 경연 형식의 편집과 진행이 더해지면서 A.I 를 마치 살아있는 로봇처럼 생각하는 착각도 들고 그 결과물에 신기함도 갖게 된다. 이보다 한달 쯤 앞서 방영된 m.net 의 A.I 음악프로젝트 <다시한번> 거북이, 김현식 편에 이어 최근의 sbs 세기의대결 까지 보면서 A.I 의 성대모사와 모창의 기술에 적잖이 놀란것은 사실이다. 옥주현과의 대결에서 45대 8 로 갈린 것을 두고 "인간의 승리" 라고 표현한 것에는 씁쓸한 웃음이 따랐지만 아무튼 현재 실현되어 있는 그 완성도의 수준이 대단히 높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모창에 비해 비교적 덜 화제가 된 작곡대결 부분이 나로서는 더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A.I 가 작곡한 곡과 김도일 작가가 작곡한 곡을 가수 홍진영이 부르고, 둘 중 홍진영 본인이 더 마음에 드는 곡을 선택하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는, 참으로 멋적고 억지스러운 대결 방식이었다. 이 방송분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누가 이기느냐' 보다 설민석과 홍진영 등장 부분이 편집 되느냐 마느냐에 더 몰린것도 사실이다. 공교롭게 이 두 명 모두 논문표절 논란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거리는 A.I. 작곡 자체에 대한 가치의 문제였다. 

나는 음악저작권법과 지적재산권에 관하여 "음악저작물이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창작물" 이라고 배웠다. 이는 법률로써 정의되어 있는 것으로 "사람",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 "창작물" 이라는 요건들을 모두 갖추어야 법으로 보호받는 저작물로 인정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홍진영이 부른 "사랑은 24시간" (A.I 가 작곡한 곡이다) 이라는 곡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일까? 해당 방송을 보면 김도일작가는 "텔레파시" 라는 곡을 만들기 위해 한달간 고심하고 수정하며 감정표현의 과정을 거친것을 알 수 있다. 평소 3분에 한 곡을 쓴다고 하는 분이지만 그 역시 사상이나 감정을 빠른시간 내에 표현하는 그 분의 능력인 것이다. 한편 A.I 작곡 쪽은 좀 복잡하다. A.I. 가 실제로 작곡을 하지만 그 작품을 사용할지 말지는 3명의 사람이 음악을 듣고 나서 논의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게다가 결과물이 사람의 마음에 안들면 다음 곡 창작에 개발자의 설정변수 수정이 개입된다. 그렇다면 "사랑은 24시간" 은 사실상 인간의 판단이 포함된 것으로 온전한 A.I. 의 것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음악 작곡 자체에 사람이 참여하지는 않았고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여러편의 작품 중 하나를 취사선택하는 역할만 사람이 했다면 작곡은 오롯이 인공지능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의 학습을 바탕으로 생성된 2차적 능력일테니까 다수의 사람들이 뱉어낸 사상 및 감정을 자신 (A.I)의 어법으로 흉내 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본질적으로 작곡한 결과가 인공지능의 것이라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대로 학습에 사용된 수많은 음악들을 토대로 작곡을 하였으니 학습용으로 사용된 샘플음악의 작곡가들 모두에 대해 A.I 가 무단으로 저작권침해를 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 역시 태어난 이래로 많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 한다면 그 점에서는 서로 비긴것으로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작곡법을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우연'과 '규칙' 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모차르트 미뉴에트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모차르트의 k.516f 악보 (www.asahi-net.or.jp)

 

모차르트의 미뉴엣은 흥미로운 우연의 주사위기법을 활용하였을 뿐 사실 모차르트의 온전한 작품이다. 

모차르트는 1700년대 후반 주사위놀이 기법을 작곡에 활용하였는데, 쉽게 말하자면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들을 바탕으로 곡을 썼다는 것이어서 적잖이 충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가 미리 미뉴에트로 사용될 수 있는 176개 마디를 작곡해 놓은 뒤 번호를 부여하고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에 해당하는 번호의 마디를 순서대로 조합하여 악장을 완성시킨 것이다. 놀라운 것은 176개의 마디를 어떤 순서로 조합하여도 그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식이라면 이론상 약 9천억개의 조합이 가능한데 이 기법은 작곡을 위한 어떤 지식도 필요 없으며 순수하게 공식에 의해 작곡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장치이다. 심지어 같은 곡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정도이다. 18세기 서유럽에서 성행하던 게임이었다고 하는데, 모차르트가 그 창시자 이거나 유일한 인물인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1792년 발표된 K294d 나 K516f 가 제일 유명하다. 

 

 

팀랩 : 라이프 전시는 작품일까 제조물일까

2020년 동대문 DDP 에서 열린 팀랩 : 라이프 (teamlab : LIFE)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마음이 사뭇 복잡했다. 팀랩 은 '인터내셔널 아트 컬랙티브' 라는 정체가 애매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국제적 예술집단인데 여기에는 화가 같은 전통적인 예술인 외에 수학자, 건축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관람한 전시는 주로 프로젝션으로 바닥과 벽에 조사되는 빛으로 구성되었다. 벽에 비추어지는 영상은 전시공간마다 꽃, 나비, 폭포, 물결과 파동 등의 주제를 갖는다. 이 영상들은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에 따라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생성해 내는데 관객의 수, 관객의 움직임과 위치를 감지하여 프로그램이 나름의 반응을 함으로써 구현되는 형식이다. 따라서 계속해서 새로운 영상이 만들어지며 전시기간 중 동일한 영상은 존재할 수 없다. 나로서는 두가지 면에서 매우 이상한 전시였던 것이다. 첫번째는 작품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작품이 프로그램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이다.

작품들은 일종의 스트리밍이기 때문에 저장되지 않고 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지도 않는다. 저장도 보존도 재현도 불가능한 미술작품이다. 물감이나 찰흙 등 실존하는 "물질"이 배재된 "빛의 흐름"이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음악바닥에 있는 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형상과 질료에 진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나, 진리를 모방한 표현물이 예술작품이라고 반박했던 플라톤이 이 전시를 보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입장료가 아까워 한 잔 하러 갔을 것이고 "빛"을 강조했던 플라톤은 매우 기뻐서 한 잔 하러 갔을 것이다. 나는 실존하지 않는 미술작품의 개념이 보편화된것인가 하는 충격에 그 날 저녁 한잔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홍진영과 이세돌은 누구를 상대한 것인가

팀랩의 작품 (일단은 "작품"이라 해두자.) 은 사람의 작품일까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A.I 가 작곡한 음악은 저작료를 받을 작곡가가 없기 때문에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다. 팀랩의 미술작품들은 창작 미술 저작물로 인정받고 있을까? 만약 이것이 인정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니라면 그 작품의 기법이나 결과물을 타인이 도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사랑은 24시간" 의 멜로디는 누구라도 도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벌일 때 알파고를 사람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사랑은 24시간" 을 작곡한 음악 A.I 나 팀랩이 프로그래밍한 미술 A.I 나 알파고 라는 바둑 A.I 가 다를바가 없으며 학습대상과 표현의 분야가 다를 뿐이다. A.I 창작물의 저작권이 존재한다면 A.I 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알파고는 사람으로서 바둑기사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음악의 경우 현행 저작권법상 저작권자와 저작인접권자에 속하는 작곡, 작사, 편곡, 가창, 지휘, 연주자들이 창작성을 인정받아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이 분야들에 A.I 의 참여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항상 법은 현실보다 턱없이 느리게 변화하고 작용하지 않던가. 아마도 경제활동의 주체가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에게 돈을 지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것이지만 그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에게는 돈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프랑스 음악저작권협회 (SACEM)는 인공지능 작곡시스템인 AIVA를 저작권이 있는 작곡자로 인정한 바 있다. 이미 2017년에 벌어진 일이다. 저작료는 AIVA 의 개발사인 Aiva Technology 에게 돌아간다. 예술가가 아닌 개발자가 예술작품의 창작자로서 저작료를 지불 받는것에 대한 논쟁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A.I 의 작품이더라도 이것이 무단 복제되거나 표절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현재 표절은 법적인 이슈가 아닌 윤리적 도덕적 잣대이며, 법적인 해석은 지적재산권침해 판결을 법원에서 내리는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따라서 복제와 표절에 대한 콘트롤은 저작권법이 아닌 별개의 법령으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데 한국의 입법기관인 국회의 상황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그 시점은 묘연하기만 하다. 아무튼 앞으로도 A.I 의 작곡이 저작물이 아닐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현행법상으로는 말이다.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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