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이동성이란 음악의 제작에 있어서의 이동성, 그리고 음악 소비 형태에 있어서의 이동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서로 다른 입장이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각각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이 조금 다르기도 하다.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 이동성이란 애초에 원초적으로 보장된 권리였다. 물론 지금도 음악은 어디서나 만들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작곡 행위 자체가 곧 음악 생산이며 악보에 음표를 나열하여 기록하는 것으로 작곡 행위가 완성된다는 매우 오래된 고전적 작곡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러하다. 피아노 또는 기타 정도의 악기라도 손 앞에 있어야 더 좋긴 하지만, 악기 없이도 그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음악적 영감을 오선지에 쓱쓱 그려내던 천재적 음악가들의 모습은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음악 제작 (작곡)의 이동성은 애초부터 그러해 왔음이 충분히 납득 갈 것이다. 중세시대에 들어 대위법이 발전하면서 화성(화음)의 조합이 중요하게 대두되었지만 작곡에 반드시 화성이 포함될 필요는 없으며, 이전 고대부터 구전되어 오던 단선율의 민요 등도 엄연히 음악이다. 심지어 오선지가 없으면 식당의 냅킨으로도 작곡을 하던데 이건 이런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기도 하다.
클래식(고전음악)의 시대에는 그랬었다고 하자. 1930년대에 릭켄벡커(Rickenbacker)와 깁슨(Gibson)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만들어 대면서 대중음악은 4-리듬 기반의 밴드 형태로 단숨에 자리가 잡히게 된다. 4-리듬 ( [포:리듬] 이라고 읽자)은 대중음악 반주의 가장 기본이 되는 드럼/베이스/기타/건반 네 가지 악기를 말한다. 구글에 포리듬을 검색하면 “푸른 저편의 포리듬” 이라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대한 내용만 주로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 작품이고 내가 이야기 하는 포:리듬과는 무관하다. 포리듬은 한국의 음악 스튜디오에서만 통용되는 말이기 때문에 일반인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지는 않으며 외국에서도 쓰지 않는 말이다. 해외에서는 보통 Rhythm Section Ensemble 정도로 표현한다. 대중음악에서 포리듬 기반의 밴드 형태가 보편화 되면서 밴드 멤버들이 모두 음악 제작에 참여하게 되고, 드럼을 포함한 악기들이 세팅된 합주 공간에서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음악 제작의 이동성은 크게 축소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컴퓨터로 전자악기(신디사이저)를 제어하는 통일된 인터페이스가 확립되었는데, 마침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리면서 혼자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1인 창작의 시대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이 인터페이스를 MIDI라고 한다. MIDI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게 지금부터 고작해야 40년 전이니, 현재 음악 업계에 있는 50~60대 고참들은 처음 MIDI를 만지던 그 시절 고군분투 스토리가 너무나 재미있고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글질거리는 추억거리이다. 왠만한 군대시절 썰 보다 더 흥미진진하다(물론 본인에게만).
초기의 MIDI 환경은 큼직한 데스크탑 컴퓨터와 그보다 더 무거운 모니터, 여러 종류의 케이블 뭉치로 이루어진다. 키보드는 키보드 단자에, 마우스는 마우스 단자에 꽂아야 하고 모니터는 모니터 케이블로, MIDI 인터페이스는 프린터 케이블을 사용해서 프린터 연결 단자에 꽂았다. MIDI 인터페이스와 신디사이저/샘플러 사이에 5핀 미디케이블을 연결해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 까지가 절반의 완성일 정도로 복잡했다. 이런 세팅을 들고서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은 원룸 용달이사 하는 것 보다 더 큰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역시 음악 제작의 이동성은 용이하지 않았다.
컴퓨터와 MIDI의 활용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다만 그 이동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제품의 등장에 주목해 볼 수 있는데 바로 MacBook 과 USB (Universal Serial Bus)가 아닐까 한다. 모든 케이블을 하나로 통합시킨 USB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임에도 등장 이후 10년가량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로 사용 빈도가 극히 적었고 “Un-used Serial Bus” 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었었지만, 이제는 SCSI, RS232, Firewire 같은 기존 포맷들을 모두 제끼고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위아래 방향이 없는 C타입이 나오기 전까지 [USB는 “어 시발 반대로꽂았네” 의 약자]라는 썰이 돌았었다.
USB의 역할이 크긴 하지만 그보다도 음악 제작의 이동성이란 MacBook 유저가 아니면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이제는 음악 창작용 컴퓨터에 윈도우-맥 구분이 의미가 없어졌지만 비교적 극소수 덕후들의 전유물이던 애플 컴퓨터가 아이폰 보급과 더불어 대중화 되었고 스타벅스+맥북+헤드폰의 조합이면 매우 힙한 음악창작인으로 보이게 되기에 이르렀다.
음악 제작의 이동성을 단지 편리함의 변천으로 이해하면 그것으로 그만일 수 있지만, 다시 바라보면 음악 제작의 편리성이란 음악 제작의 용이함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이함이란 접근성의 확대 즉, (소위) 전문가의 전유물이 대중에게 개방되는 매우 큰 변곡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의 영역이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경계가 대단히 모호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한국말에 “개나 소나”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음악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수준 낮은 습작 수준의 음악이 제작되고 발표된다는 단점, 대중음악의 범위가 다양하게 확대된다는 장점이 혼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 작곡자들의 넘볼 수 없는 전문 영역이 허물어 지면서 전문 작곡가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게 된 내부적 고민들이 대두된 점 등이 함께 대두되었다. 이에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격증 신설에 대한 담론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매번 강하게 반대하여 추진을 무산시킨 것이 기존 작가들 자신이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이쯤 정리해 두고 전체를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대대로 이어져오는 “보편화의 부정적 고집 편향”이 작용하고 있음이다. 어떤 현상이 새롭게 대두됨을 이야기할 때, 그 새로움의 의미와 방향성을 보지 않고 그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를 들면서 ‘이런 건 어쩌란 말이냐’ 하고 반기를 드는 것 말이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 이어야 한다는 식의 고집스러운 편향 사고가 우리에게 너무도 깊이 번져 있다. 이동성이 뛰어나고 손쉬워진 창작 도구는 잘 써먹으면 될 일이고 오히려 그 덕에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 함량미달의 작품이 생산되고 심지어 간혹 인기를 얻는 꼴을 보면서 속이 상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모든 사람이 내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고 구매해 줄 것이라 바라는 이기적 오류를 낳는다. 변화와 다양성을 능동적으로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에서 대중음악의 멋짐이 화려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나 소나 음악 만든다는 한탄은 접어 두는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음악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감각에 의존하는 예술이어서 그를 뒷받침하는 시각적 보조의 역할이 오히려 큰 분야이다. 힙한 의상을 입고, 힙하게 꾸민 작업실에서 힙해 보이는 장비를 쓰는 것을 인스타에 공유하는 것은 음악 창작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아직도 크고 무겁고 비싼 아날로그 음향장비와 악기들이 수입되고 젊은 작가들의 구매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음악 창작의 이동성은 매우 높아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창작의 이동성은 매우 낮을 수 밖에 없다. 음악 소비의 이동성과는 사뭇 다른 방정식이다.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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