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etter Days Ahead

음악과 이동성 사이의 방정식 (2)

by 채감독 2021. 12. 31.

음악 감상은 원래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 악기와 연주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내가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유선 통신 기술(전화)이 만들어지면서 이것도 조금씩 편해 지기는 했다. 무선통신 (라디오) 이전에 이미 유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었다. 무려 1890년 런던에서는 극장에서 벌어지는 음악 연주를 유선으로 각 가정에 배달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었다. 구독자들은 비싼 연회비를 내고 정해진 시간에 가정에서 단말기에 헤드폰을 꽂고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었다고 한다. 이른바 본방 사수. 그 이후로 축음기 등 기기를 사용해 음악을 소비하게 되었는데 역시 그 시간은 오로지 음악 감상을 위해 사용되는 의식과 같은 고급 취미의 행사였다.

음악 스트리밍 구독중 (1910년경)


그리고는 음악 소비의 이동성이 탄생했다. 앞서 MIDI의 태동을 이야기했던 1980년, 바로 그 1980년이 늘 문제이다. 1980년은 소니 워크맨의 해였다. 실제 처음 출시된 것은 1979년인데, 흔히 알고 있는 작고 가벼워진 모델은 1981년 탄생한 워크맨 2 (WM-2) 였다. 공식적으로 전 세계 포터블 플레이어 시장의 절반을 소니 워크맨이 장악했었다. 아주 얇은 헤드밴드에 달린 작은 유닛의 헤드폰이 유행을 탔다. 이 이후로 음악 소비의 이동성은 결코 선회하거나 축소되지 않았다. MP3 라는것이 나오면서, 아이리버를 거쳐 아이팟 이라는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플레이어는 콩알처럼 작아져 갔고, 헤드폰은 점점 커져왔다는 점이 특이할 뿐. 소비의 편리성 앞에서 음악의 퀄리티는 늘 두번째 고려사항 이었다. CD보다 뛰어난 음질의 DVD-Audio나 SA-CD (Super Audio CD) 는 비싸고 불편했기 때문에 MP3플레이어와 스트리밍 앞에 처절하게 외면 당했다. 음악의 용도가 집중을 요하는 감상의 대상에서 나의 일상생활을 뒷받침하는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전환’된 것이다 (‘전락’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음악 소비의 이동성은 폐쇄적 이용을 전제로 한다. 이는 음악이 가지는 특성 중 보편성에 기인한다. 음악의 보편성이란, 누군가가 내 옆에서 음악을 틀면 나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음악에 노출되고 만다는 음향 회절적 특성을 뜻한다. 그래서 타인이 있을 때 음악을 트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 행위이다. 원치 않는 음악은 다름 아닌 소음에 속하기 때문이다. 매우 강한 음압의 소리를 발사하는 음향 대포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청력을 영구 손상시킬 수 있고 인권의 심각한 유린이라는 반대 여론이 커서 국제적으로도 사용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폐쇄적 이용이라는 전제 하에서 현재 음악 소비의 이동성은 노캔 (노이즈캔슬링 기능)과 블투 (블루투스)로 집약된다. 사람들이 늘 음악과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현상이지만 음악을 대하는 가치존중의 정도는 이동성과 반비례로 하락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음악을 쉽게 쉽게 소비한다고 해서 만들기도 쉽게 쉽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어팟과 갤럭시버즈의 흥행을 비난할 이유는 없지만 한편으로 음악을 소중히 대하는 최소한의 인식, 소수 소비자의 존재, 하루 중 음악을 위해 할애하는 잠깐의 시간이 영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고도 사라지지가 않는다.
LP, 레코드판 혹은 바이닐 (Vinyl) 이라고 하는 복고 미디엄의 부활은 10년 전부터 매 해 관심있게 지켜보던 현상이다. 그 성장세가 급하지는 않지만 지속되고 있고, 반대로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CD 판매량을 이제는 LP판매량이 앞선 지 오래다. 만약 LP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재생할 수 있다면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단지 힙한 굿즈 개념으로 LP를 구입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으로는 이 LP현상이 지속되기는 어렵다. LP를 꺼내서 3개의 케이스 (겉비닐과 종이케이스 그리고 속비닐) 속에 있는 동그란 물체를 꺼내는 것이 음악을 음악으로 대하는 의식(儀式)의 시작이다. 아날로그 세상에 살면서 아날로그를 동경하는 것은 과연 모순인가. LP를 구입했다 하더라도 실제 음악 소비의 99.9%는 스트리밍으로 해소하겠지만, LP를 구입해 소장하고 있음으로써 언제라도 아날로그 음악을 불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음과 되어있지 않음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날로그 음악 소비의 경험을 한 번 해본 이들이 계속해서 아날로그를 사랑하고 음악을 존중하고 돈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으름을 경계해야 한다. LP를 사는 사람들은 갑자기 원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대 문화의 최첨단을 누리는 문명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LP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개나 소나" LP 300장쯤 찍어놓고 나도 창작인으로서 문화적 소임을 성실히 했노라 자부해서는 곤란하다. 음반에 담긴 음악의 완성도는 물론 음반 자체의 퀄리티와 커버 디자인에도 더 큰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지 않으면 안된다 (LP는 만드는 공정에 따라서 음질이 천차만별이어서 동일한 음질의 보장이 매우 어렵다).


2021년 등장했던 각종 “장비”들 중에 이노 (Brian Eno) 은 가장 임펙트가 큰 그림의 떡 중 하나였다. 아크릴 재질의 턴테이블 베이스는 내부에 장치된 LED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불빛을 만들어 낸다. 만약에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어디에 놓고 언제 어떤 음악을 재생해 볼까 하는 고민에 깊이 빠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선택된 공간과 시간에서 선택된 음악과 함께 한없는 불멍에 빠져들겠지. Eno의 친필 싸인이 각인되어서 단 50개만 만들어 졌고 몇개가 팔렸는지 얼마에 살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음악 소비의 이동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준 것으로 약간의 떡고물을 먹은 셈 칠 수 있을 것 같다. 소리는 공기의 울림이고 그 회절 하는 움직임을 제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음악의 본질은 공기 분자의 떨림에 있지 않다. 듣는 사람이 존재 하고 그로 인한 감정의 생성이 있어야 의미 있는 것이다. 같은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다르면 소비하는 나의 감정이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 관계성의 방정식은 영구 미제일 것이고 음악 존재의 본질일 것이다.

채승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