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음악 바닥에서 지난 20년간의 변화를 이야기 하자면, 거의 모든것이 달라졌다. 다른 예술 분야도 나름 겪어왔겠지만 음악은 그야말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향하는 세대의 격변을 지내왔다. 대형 스튜디오에서의 음악 제작은 개인의 컴퓨터 안으로 순간이동했다. 레코딩에서 믹싱으로, 마스터링으로 옮겨다니던 마스터 테이프 들은 클라우드와 이메일이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다. 유통의 혁명 속에서 음반구입은 스트리밍으로 대치되었다. 자동차 안에서의 CD 플레이어는 블루투스로 기화(氣化) 되었고 이어폰 잭이 사라진 음향기기는 USB 단자만 뚫려있어도 할일은 잘 한다.
헌데, 1960년 이래 좀처럼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 Stereo 이다. 생산되는 (거의) 모든 음악의 재생 포맷이다. 그 옛날 릴테이프 녹음 시절에도, 64비트 디지털 레코딩의 현재에도, LP, 카세트테이프, MP3, FLAC 모두 다 결론은 Stereo.
Stereo 방식의 고착에는 1982년 상용화가 시작된 Compact Disc Digital Audio, 줄여서 CDDA (통상 CD) 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전 세계 CD 플레이어의 보급률이 애초 예상보다 수십배 커진 것은 개인용 컴퓨터에 CD 드라이브가 장착되어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음악 재생 전용의 CD Player 뿐만 아니라 컴퓨터 부품인 CD-ROM Drive 역시 보급대수에 포함되어 계산된다. 전 세계에 CD 재생이 안되는 곳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서라운드 최초 상황
44.1kHz 16bit 사양의 CD 포맷은 1980년대 초반 당시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지만 20세기가 끝나갈 즈음 CD 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미디엄에 대한 도전이 잇따랐다. CD 와 같은 외형을 지녔지만 무려 비디오 재생이 되는 DVD 의 등장은 대형 사건이었다. DVD 는 5.1채널 이라는 엄청난 서라운드 포맷의 오디오가 들어가기 때문에 스테레오를 뛰어넘는 차세대 포맷으로의 자격을 갖춘것으로 보였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포맷은 곧 새 제품의 출시와 판매를 뜻하는 것이고 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거의 모든 신혼부부의 혼수 가전목록에 DVD 플레이어와 6개의 스피커가 포함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용산 전자상가, 테크노마트, 하이마트 등 모든 가전제품 판매점들이 5.1채널 홈씨어터를 가정필수품으로 팔아대었다. 하지만 6개의 스피커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박스를 뜯었던 많은 소비자들은 서라운드를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디지털 가전] 신혼집 거실 극장으로 바꿔봐 (매일경제 2005. 4. 18)
DVD-Video 라는 이름의 이 디스크는 사운드보다는 영화를 보는 용도로만 사용되다가, 잡지나 가전제품 등에 끼워주는 번들 신세로 전락하며 지금은 CD 보다 미미한 존재감으로 남아있다.
DVD 디스크에 담기는 데이터의 대부분은 영상데이터이다. 오디오는 주로 Dolby Digital 포맷이다. ac3 라는 형식으로 압축되어 들어가는 오디오의 음질은 MP3 192 또는 128 정도의 수준이다. 영상데이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은 공간에 할당받는 오디오의 품질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디스크에 영상을 빼고 오디오데이터를 담으면 매우 고품질의 무압축 오디오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DVD-Audio 이다. 고품질의 무압축 5.1 서라운드 오디오를 듣기 위해서는 DVD-Audio 플레이어를 또 구매 해야만 했다. 같은 시기에 5.1 서라운드 초고음질 오디오를 담는 SA-CD (Super Audio CD) 가 등장했는데 SA-CD 플레이어는 심지어 DVD-Audio 플레이어 보다 더 비쌌다. 하지만 일단 DVD-Audio 가 시장의 외면을 먼저 받았고, 살아남은 SACD 는 흥행에 실패한다. 디지털 역사상 최고의 음질과 서라운드 오디오 라는 유혹을 던져보았지만, 소비자들은 간편하고 저렴하고 익숙한 스테레오 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영화판 현재상황
영화 사운드의 혼란스럽던 차세대 포맷 전쟁에서 현재로서는 Dolby Atmos 가 표준으로 자리잡는 형국이다. 이전의 돌비 디지털 서라운드는 채널 기반 (Channel Based) 으로, 생산자의 모니터 환경과 소비자의 재생 환경이 같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제약이 있었다. 이는 스테레오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제작자도 스테레오로 모니터 하고 소비자도 스테레오로 재생한다. 그런데 요즘 추세인 Atmos 는 두 가지의 큰 차이점이 있다. 채널 기반이 아닌 객체 기반 (Object Based) 이라는 점, 재생환경이 달라도 그것을 감안하는 형태로 상황에 맞도록 적응재생을 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차이점의 공통된 개념은 이렇다. 기존에는 생산자가 콘텐츠를 만들면 그것이 완전 고정되어서 소비자 단계에서 이를 변동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객체기반의 Atmos 는 소비자의 재생환경을 시스템이 파악해서 그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원본에 가깝게 들려준다. 주는대로 먹어야 했던 시절이 지나고 고객님을 위한 맞춤 케어가 시작됬다는 것이다.
음향시스템의 거대 공룡인 Dolby 는 항상 극장 사운드 시장을 선점한 뒤 소비자 시장으로 침범해 온다. Atmos 의 기본 (필수는 아니지만 권장하건데) 사양은 7.1.4 채널이다. 이전의 5.1채널 서라운드는 앞뒤로 5개의 스피커로 나를 둘러싸면 끝이었다. 7.1.4 채널은 나를 둘러싸는 스피커가 7개로 늘어나고 천정에 4개의 스피커를 매달아야 한다. 전후좌우의 표현을 넘어 하늘과 땅의 표현까지 하기 위해서이다. 같은 서라운드가 아니기 때문에 예전의 것을 2-D 서라운드, 지금의 것을 3-D 서라운드라고 한다. 그런데, 3-D 입체음향이란 표현을 과거 5.1채널 시절부터 써왔기 때문에 요즘 많이 등장하는 Immersive 사운드 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몰입 사운드? 한글로 적당한 표현을 아직 찾지 못했다.
스테레오 위주의 대중음악 형식에 입체음향이 드디어 개입할 때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트리밍의 전송속도와 무선인터넷 대역폭이 충분히 높아졌고, 여러 채널의 오디오를 전송하는 네트워크 오디오 기술도 필요 이상까지 발전했다. 서라운드로 음악을 제작할 수 있는 도구는 몰라서 그렇지 우리 일상에 예전부터 있어왔다. Logic Pro나 Cubase 가 있다면 지금 오디오채널의 Output 을 Surround 로 지정해 보라.
단, Dolby Atmos 는 스테레오 믹스의 뻥튀기 확장판이 아니라 제작 첫단계부터 Atmos 제작 도구를 사용하여 믹스해야 한다.
현재상황 1
하지만 딱히 놀라거나 할 이유는 없다. 스테레오 채널의 스테레오 패너와 스테레오 마스터 버스를 통해 스테레오 사운드를 만들듯이, Atmos panner 와 Atmos bus 를 제공하는 DAW 에서 제작하면 된다. 구체적인 tool 은 Dolby 와 Avid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중요한것은 Dolby 가 이미 대중음악을 Atmos 화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화 사운드트랙이 아닌 음악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서비스를 론칭하며 Dolby Atmos Music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2019년 12월부터 Tidal 이나 Amazon Music HD 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 바 있다. 헌데 우리는 알 수도 없고 들어볼수도 없는것이, 한국은 워낙 해외 서비스의 진입장벽이 높아서 Apple Music 이 간신히 사업을 시작했을 뿐 Spotify 를 비롯한 대부분의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가 사용불가이다보니 이런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역시 바닥수준이다. 차치하고라도 이런 신기술을 마음 편히 테스트조차 해보기 어렵다는 것은 여간 실망스럽지가 않다.
다행(?)스러운것은 미국에서조차 Amazon Music 으로 Dolby Atmos Music 을 즐길 수 있는 방법 역시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Amazon Echo Studio 라는 A.I 스피커를 $199에 구매해야만 한다. 아마존 인공지능 스피커의 상위버전인 셈인데, 사방을 향한 스피커와 공중을 향한 스피커의 조합으로 사실상 무지향성 재생을 해주는 구조이다. 이 인공지능 스피커는 사용자의 방 또는 거실의 음향상태를 파악하여 그에 최적화된 사운드 재생을 해준다.
현재상황 2
Tidal 을 통한 스트리밍 역시 Dolby Atmos Music 을 지원하는 일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만 가능한데, LG G6, 레노보의 2017년 모델 3종, iPhone 11 과 XR, XS 기종, iPad Pro (2018) 에 국한되어 있고, 게다가 iOS 계열은 이어폰이 아닌 스피커 재생일 때만 해당된다.
결국 스트리밍이 아직 어렵다면 남은 방법은 블루레이 디스크로 발매되는 콘텐츠인데, 현재 Atmos 로 믹스된 음악은 비틀즈 Abbey Road 앨범이나 R.E.M. 디럭스패키지의 Photograph 등 역시 아직 극소수이다.
콘텐츠와 디바이스가 준비되었다 해도 그 다음 문제는 스피커인데, 사실상 돌비규격의 7.1.4 는 갖기 어렵다. 헤드폰단자에 꽂아서 들으면 소리는 나오지만 Atmos 사운드가 아닌 그저 다운믹스된 스테레오버전일 뿐이다. Dolby 는 끊임없이 가정용 스피커 장비를 공략하겠지만 소비자의 선택 기준은 편의성 그리고 콘텐츠의 규모에서 온다.
현재상황 3
콘텐츠의 규모 면에서 (가요를 제외하고 이야기 한다면) 전망이 나쁘지는 않다. 최근 Dolby 는 유니버셜뮤직, 워너뮤직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들 음반사를 통해 나오는 신곡과 기존의 곡들을 포함해 수천곡 이상의 Atmos Music 콘텐츠가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소비자에게 얼마나 부담없는 방식으로 - 플랫폼과 지원하는 하드웨어 면에서 - 접근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DTS 에서 개발한 DTS Headphone: X 가 Atmos 와 흡사한 객체기반의 Immersive 사운드 포맷인데, 헤드폰에서 3차원 위치 구현이 가능한 좋은 기술임에도 아직 음악 콘텐츠 관련 움직임이나 계획발표가 없기 때문에 사업적으로는 이미 Dolby 에 뒤쳐진 것이 보인다. 하지만 그 기술은 정말 놀랍다. 아래의 데모 영상은 반드시 헤드폰 착용하고 클릭해보자.
현재상황 4
DTS 를 무시할 수 있다면, Sony 의 360 Reality Audio (360RA) 가 사실상 Dolby 의 경쟁자인데, 늘 독자적 포맷을 들고 나와 독특한 자기 방식을 고집하다가 결국 잘 안되고 마는 고질적인 Sony 병이 염려되지만, 내용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영화+스피커를 기반으로 발전된 Dolby 형식과 달리 애초에 음악+헤드폰 조합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나름의 강점이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이미 Tidal, Deezer 등의 스트리밍 플랫폼에 1천곡 규모의 음악을 서비스 중인데, Sony 도 BMG 라는 거대 레이블을 품고 있는 회사이다 보니 콘텐츠의 규모는 앞으로 꾸준히 많아질 것이다.
Sony 360RA 는 기술적으로 보면 Atmos 와 같은 객체기반이지만 헤드폰 재생이 기준이기 때문에 이미 보편화 된 개념인 HRTF (Binaural) 기법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사용중인 어떤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써도 되므로 전용 기기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한 발 나아가서, Sony 의 360RA 를 지원하는 Sony 헤드폰 기종을 사용하여 개인별 커스터마이징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HRTF 는 개인마다 다른 머리통과 귓바퀴의 형태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귀 모양에 맞는 세팅을 가지게 되면 그 현실감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전용 앱을 설치하고 귀 모양을 카메라로 찍어서 서버에 전송하면 자신의 귀 형태에 가장 근접한 세팅을 제공해준다.
Sony 제품일 필요는 없으니 아직 헤드폰을 벗지 말고 아래의 샘플을 들어보자.
2020. 7. UPDATE
창작자 개인이 직접 만든 Atmos 콘텐츠를 디지털유통 플랫폼에 공급하는 것이 매우 쉬워졌다.
AVID 와 Dolby 가 공식 발표한 바 대로, 창작자는 AvidPlay 라는 유통대행 서비스를 통해 Atmos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AvidPlay 는 일정액을 납부한 사용자가 자신의 싱글이나 앨범을 출시하여 모든 메이저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급하게 해 준다. 작년(2019)에 시작된 이 서비스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선 유통 대행에 대한 별도의 수수료가 없다. 다만 서비스 이용료를 선불로 지불해야 하는데, 가령 싱글 1 트랙의 유통서비스를 1년간 유지하는데는 $4.99만 내면 된다. 앨범 (20곡 미만) 한 장의 경우는 연간 $19.99 가 든다. 곡 수의 제한 없이 1년간 무제한 이용하는데 $24.99 이니 약 3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2020년 8월부로 시작된 Atmos 서비스는 싱글, 앨범 무제한으로 1년 유지비용이 $49.99 이다. AvidPlay 를 통해 Spotify 와 AppleMusic 을 포함한 150여 서비스에 음악이 공급되는데, Atmos 콘텐츠는 서비스가 가능한 Amazon Music 과 Tidal 에서 서비스 된다. 올해 초 Tidal 이 Atmos 서비스를 시작한 영향이 유통시장의 방향측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AvidPlay 는 수익 분배에 있어서도 참여한 사람과 각각의 지분율을 지정해 놓으면 자동으로 일할 계산되어 수익을 분배해 준다.
채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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